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에미야 키리츠구 (문단 편집) ==== 그의 사상에 관하여 ====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인질극을 벌이고 심지어는 하얏트 호텔을 폭파했을 때 "옛날 같았으면 사람들을 대피시키는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냉정하다.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타인을 위해 살아왔지만, 타인을 구하기 위해 또다른 타인을 희생시킨 기준은 '''다수인가 소수인가'''였다. 일관적이긴 했지만 다른 가치는 배제한 채 독단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켰던 모든 행위가 모두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 기준이 수많은 상황에서 최대 다수를 살리기 위해 써먹는 방법이기는 하다. 그러나 정말로 당장 사람들이 죽게 생긴 것도 아니고, 불확실한 미래의 위험을 배제하기 위해 현재 살아있는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은 확실성의 균형이 어긋난다는 점에서 계산이 공평하지 않고, 희생당하는 소수는 그런 사고방식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만약 지금 당장 300명과 200명이 죽게 생겼으며 그 중 단 한 쪽만 구할 수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이 눈물을 머금고 300명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눈 앞에 닥친 위험을 해결하는 것과, '미래에 300명이 '''죽을지도 모르니까''' 지금 200명을 죽인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일단 해결 방안이 정말 둘 중 하나 밖에 없다는 보장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구하지 못하는 것'''과 '''직접 죽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키리츠구의 사상에 관한 평가를 종합하면, '''무고한 사람을 수없이 희생시킨 [[전체주의|전체주의자]]'''지만, 자기 자신도 언제든지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었고, 비록 소수를 버리는 방식이었지만 여러 사람이 희생될 일을 미연에 방지했다. 때문에 '''자신의 소원을 포기하면서 세계를 구한 안쓰러운 사람'''이라는 평을 받는 반면, '''자신의 손으로 세계를 구원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멋대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버린 [[확신범]]'''[* [[확신범#s-1|본래 의미]]뿐만이 아니라 [[확신범#s-2|잘못 쓰이는 의미]]도 포함한다.]이라고 시니컬한 평을 내리는 사람도 있다. 키리츠구의 이타심마저도 근본적으로는 이기심이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 세계 평화라는 허황된 목표를 독단적으로 실행하는 에미야 키리츠구와 여러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희생하는 것을 같은 선상에 두는 것은 경우가 좀 다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